박경리 유고시집 -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
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
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
인간이 인간을
얼마나 알아야
얼마나 사랑하고 이해해야
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...를
끝없이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 있었어요.
바로 박경리 선생님의 '토지' 인데요.
호흡이 참 긴 대하소설임에도 불구하고
한번 읽기 시작하면
결코 손에서 놓을 수 가 없는 소설이죠.
소설 속 그들의 삶이 너무나 애처로워서
너무나 눈물겨워서 목놓아 울기도 하고
때론 분노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
소설을 쓰신 박경리 작가님을
정말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죠.
천재가 아니실까...
오늘은 그 분의 유고시집이죠.
'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' 를 소개할까 해요.
이 시집은 작가님이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
남아 있는 모든 기운을 사르면서 남기신
39편의 시를 모아 책으로 만든 건데요.
그 분의 어린 시절 사진도 볼 수 있고
이 사진은 30대 때 사진인데요.
사진을 보면서
인생이란... 무엇일까...
삶을 되돌아 보고 주위를 둘러보게 되더라고요.
물론
시를 보면서는 더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됐지요
히말라야의 노새
히말라야에서
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
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
어머니!
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
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
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
다르게 보게 되었다
아아
저게 바로 토종이구나
- p.96
사람의 됨됨이
가난하다고
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
부자라고
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
그것은
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
.
.
중략
.
.
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
후함은 낭비가 아니다
인색한 사람은
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
후한 사람은
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
사람 됨됨이에 따라
사는 세상도 달라진다
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
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
천국과 지옥의 차이다
-p.89
예전에는 이 시들이 좋았어요.
그런데 요즘엔 또 다르더라고요.
산다는 것
체하면
바늘로 손톱 밑 질러서 피 내고
감기 들면
바쁜 듯이 들 안을 왔다 갔다
상처 나면
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
.
.
중략
.
.
속박과 가난의 세월
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
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
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
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
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
-p.13
마음
마음 바르게 서면
세상이 다 보인다
빨아서 풀 먹인 모시 적삼같이
사물이 싱그럽다
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
진실은 눈멀고
해와 달이 없는 벌판
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
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
무간지옥이 따로 있는가
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쫓는 자
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
-p.122
여행
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
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
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
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
.
.
중략
.
.
그러나 나도 남 못지 않은 나그네였다
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
혼자서 여행을 했다
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
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
.
.
중략
.
.
.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
혹은 배를 타고
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
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
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
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
촘촘하고 섬세했으며
다양하고 풍성했다
.
.
중략
.
.
다만 내 글 모두가
정처 없던 그 여행기
여행의 기록일 것이다
-p.23
시집을 읽으면
작가님의 어릴 때~ 삶은 어떠했고
외할머니, 어머니 등등
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
그분의 이야기를 알 수 있어요.
불꽃 같은 정열과 분노, 사랑이
모두 느껴지지요.
식탁 옆에 두고
한번씩 생각날 때마다 읽는데
꼭 한번 읽어 보시길 추천드릴게요^^
p.s
위로가 되는 '시'가 항상 곁에 있기를 바라며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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